젊은 래브라도와 산책하기.
D는 대략 3살 정도의 훌륭한 래브라도다. O 아저씨의 가장 힘들던 시기를 곁에서 충직하게 지켜내고 먼저 세상을 떠났던 T의 뒤를 이어 그 집에 입양된 그는, 약간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T를 닮아 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으니 다분히 우연한 만남에 가까운데도, 같은 황백색 래브라도인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비슷하게 생겼다. 물론 환생 같은 것은 아니다. 입양되었을 때의 그는 2살이었고, 이미 두 명의 주인에게 버림받은 적 있었으니까.
D가 처음 그 집에 들어섰던 날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뒤늦게 그 집에 도착한 나는, T가 떠난 이후로 조용하던 대문 앞에 다가가자 마자 사납게 짖는 개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B 아줌마가 늘상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대문을 열고 나와 함께 들어서자 D는 즉각 B 아줌마와 내가 가족/친구라는 것을 알아본 것 같았다. 금세 짖는 것을 멈추고, 약간의 경계심을 간직한 친절로 우리 주위를 돌다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지금도 B 아줌마와 C 할머니는 나를 두고, “D의 첫 파티원 중 하나”라고 몇 번이고 얘기하곤 하신다.
분명 보호소에서 O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임에도 D는 이미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O 아저씨와 C 할머니가 움직이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따라갈 준비를 했고, 두 사람의 발치에 번갈아가며 엎드려 있기도 했다. 그렇게 빠른 적응이 우리는 기특하면서도 조금 안쓰러웠다. 2살이라는 짧은 생에 벌써 두 번이나 버림받은 뒤에도 보호소에서 유난히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에서 필사적으로 섬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알 수 없었던 과거는 어두운 모습으로 배어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난 날은 내게 그렇게 친근했던 그가, 두 번째 만나던 날 위, 아래로 까만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서우리만치 겁에 질려 짖어댔던 일이나, 지금도 실내에서 헬멧을 쓴 사람만 보면 안절부절 못하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짖는 일을 보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모습을 한 누군가에게 학대당한 적이 있지 않나 하고 추측하게 된다. 또, 유독 M 아저씨만은 결코 집안에 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도.
그런 그에게 그 집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사진작가였던 O 아저씨가 찍은 T의 사진이 집안 곳곳에 걸려 있고, 지금도 그의 목걸이에는 집안의 성을 붙인 T의 풀네임이 새겨져 있는데. 그가 자신과 똑 닮았다는 것도 어쩌면 느끼고 있을까. 그리곤 D를 집에 데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O 아저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쿨한 듯, 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무겁게 내리깔리던 공기를 그는 사람의 얼굴보다 낮은 높이에서 어떻게 들이키고 있었을까.
어쨌거나 지금 D는 매우 다정하다. 노인들이 사는 집이라 사람에게 뛰어오르려는 기미만 보여도 큰 소리를 내며 혼내고, 개에게 엄격한 프랑스라고는 해도 더욱 깐깐한 C 할머니와 B 아줌마에게 기가 죽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오기만 하면 날쌔게 뛰어나와,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가 곤란할 정도로 반기는 그다.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가족의 친구인지 아닌지는 순간에 알아채곤 한다.
유독 나에게는 조금 응석을 부리곤 하는데, 평소 가족이 식사할 때는 식탁 옆 자기 자리에 꼼짝 않고 엎드려 있을 것을 B 아줌마가 요구하시지만, 그럼에도 내가 식탁에 있을 때만큼은 내 다리 곁에 붙어서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곤 하는 것이다. 여느 개가 그렇듯 쓰다듬고 있으면 바닥에 곧잘 드러눕곤 하는데, 누워 있는 D를 쓰다듬느라 허리를 굽힌 채로 오랫동안 있어서 식사를 못하게 되니 몸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두 팔로 감아서 내 손을 다시 자기 목덜미로 가져가기도 한다. 그러던 녀석이 지난 번 T씨와 함께 초대를 받아 갔을 때는 쓰다듬어 주지도 않는 T씨 옆에 붙어 있느라 내게는 오지도 않아 조금 샘이 났었는데, 삐친 척을 했더니 금세 알아채고 내 곁으로 오더니 평소보다 심하게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손을 떼기라도 하면 “어라? 그만하는 거야? 왜?” 라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었다. “오늘은 T씨도 있다구. 나 비싼 몸이야.”라며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가끔 D의 산책을 내가 맡아 나가게 된다. 목줄을 잡은 내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기세로 뛰쳐 나가는 3살의 젊은 래브라도다. 사랑받고 있음에도, 또한 풀과 나무가 가득한 넓은 정원이 있음에도, 실은 집안이 답답한 것인지도 모른다.
엄격한 교육을 받은 프랑스 개라고는 해도, D는 남의 집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매일 한 번씩 산책하는 F 시의 거리는 그에게 어떤 공간일까. 혹시 저용량의 3D 게임에서처럼 배경으로만 존재하고 입구는 없는 사실상의 벽들로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닐까.
길을 건널 때가 아니면 차도에 들어가는 일도 없는 D다. 길을 건널 때나 어디선가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길게 늘어졌던 목줄을 짧게 쥐고 긴장하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호기심 많은 것에 비해서는 목줄을 풀어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기색도 없다. 때로 냄새에 열중해 서 있는 D의 앞으로 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내가 차도에 내려가 D와 차 사이를 막아선다든지 하는 것에서, 내가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낀 건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사뭇 감동한 일이 있었다. 유난히 멀리까지 함께 산책하다 보니 내가 잘 모르는 길에 접어들었는데, 인도에 빼곡하게 차들이 주차돼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목 같았다. 그리고 인도 안쪽으로는 화단이 있었다. D는 화단으로 들어가 유난히 걸음을 재촉하더니, 좁게나마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로 바로 내려섰다. 그러니까, 내가 그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최대한 빨리 들어서려고 했던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고양이만 보면 그렇게 흥분하면서, 커다란 고양이를 무방비 상태로 품에 안고 뒤에서 걸어오는 아저씨를 계속 힐끔대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걷기도 했다. 얼마나 의식되고 신경이 쓰였을까.
가끔 뱅센숲을 걷고 있으면 (아마도) 아파트에 갇혀 있던 개들이, 목줄을 풀어주는 순간 말처럼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 받고 싶고 배려심도 깊은 젊은 래브라도 D는, 날이 갈 수록 점점 공기가 무거워져 가는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분류:워드프레싱 | 댓글 남기기
태그:래브라도, 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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