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 K님이 최근, “잡설”이라 달던 근황 포스팅의 제목을 CEO의 품격에 맞게 “근황”이라 바꿨다가 다시 “그러니까…”로 바꿔 연재(…)하기 시작하셨는데, 왠지 그럴 듯해 보여서 나도 그렇게 해봤음. パクッタ!(…)
2. 프랑스 들어와서부터 정신 없었다. 전시 건으로 모 레스토랑 사장님을 만나고, 출판사의 베르트 씨와도 몇 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체류증이 (뭐… 또 그런 거지 뭐) 문제가 있어서, 도무지 답도 알 수 없고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 미궁에 들어가 있는 상태. 그래도 담당 교수를 만나서 “이 학생은 우리 과 재학생으로 성실하게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현재 성적표도 디플롬도 없는 것은 그저 학교가 학기가 덜 끝나서일 뿐이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일부는 사실과 합일하고 일부는 사실에 반대되는 고마운 편지를 받았다. 그러고 나니 일단 뭔가 조금 든든한 기분이 들어서 맥이 풀린 것 같다. 정작 해결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는데.
3. 전에 “행복하냐”는 질문을 듣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답은 대충 “햄보칼 수 없써, 지금카지 그래와코 아패로도 께속”이란 내용이었는데, (…) 딱히 웃기자고 그런 것도 아니고, 우울하고 불행한 아티스트 흉내를 내고자 함도 아니었으며, 나의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가여운 척해서 애정을 끌어보려 함도 아니었다. 곰곰 생각해 봤는데,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행복한 삶이란 걸 꿈꾸는 것도 주제 넘은 일이 아닐까. 손에 닿지 않는 것만을 만지면서 행복을 바란다는 것도 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고, 불안이 가실 날이란 것도 뭐 전혀 보이질 않는 삶을, 나서서 선택해 놓고 행복을 바란다면 그것 또한 도둑놈 심보일지도.
하여튼 불행하고 우울하다는 감각 자체는, “당신이 언제는 우울하지 않았던가” 하는 말을 듣기에 이를 만큼 쭉 이어지고 있어서, 이제 슬슬 만성적인 위염과 비슷한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뭘 먹으면 늘 소화가 안 되고 속이 갑갑한 것이나 종종 살짝 쓰리는 정도는 뭐 으레 삶이란 게 그러려니, 여름엔 모기에 물려서 가려운 거고, 환절기엔 종종 감기도 걸리는 거고 하는 정도의 익숙하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그래도 때로는 탄산수를 부어대고 약을 삼켜도 밤이 되면 체기가 올라와 어지럽고 토하는 날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늘상 하는 말이지만 남들은 위염 걸리면 살이라도 빠지던데 왜 나는… 아, 내가 햄보칼 수 없는 이유가 실은 이건가. (…)
4. 마사토끼의 <커피우유신화>에 보면, 여주인공 오선지가 세상은 위험하고 불행한 곳이라 믿은 나머지, 우유의 일일 권장 섭취량처럼 그날 그날의 불행의 양은 이 정도다 하는 감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물론 나는 오선지와는 달리 우유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믿는다고 해서 그게 현실에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왠지 한 달의 불행의 양은 미리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그 달의 할당량을 다 사용하지 않으면 달이 끝나기 전에 남은 불행의 양을 모두 합친 커다란 불행이 닥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정확히 한 달이라기 보다는, 적당한 기간을 상정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 보면 7월엔 굉장한 불행을 겪어야 했던 것에 비해 8~9월엔 자잘한 불행은 불행인지도 모르고 얼렁뚱땅 넘어온 것 같다. 심지어 작업 면에 있어서는 꽤나, 행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따라줬다. 이에 비추어 볼 때, 9~10월에는 굉장한 양의 불행이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므로 출근길에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이상 미묘 기상청에서 알려 드렸습니다, 라는 느낌.
그것이 체류증이나 학적 문제, 혹은 누군가의 신변의 문제가 아니길 바라는 정도가 고작.
5. 아니, 근데 나는 정말 불행하고 우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거든. 뭐, 이것도 위염을 달고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 마찬가지려나.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는 자신을 사랑했던, 손발 오그라드는 어린 시절이 부끄럽고 민망해서라도 유쾌하게 살고 싶단 말이지. 뒤늦게 학생 신분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 어떤 연관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라도, 일전에 블로그에 쓴 적이 있던 “uulhan ilgi”를 제대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남이 조롱한다면 정말 싫겠지만, 나 스스로가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보는 것은 나름 유쾌한 일이 아닌가 싶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매일 느낀 우울함의 정도와 빈도, 타임라인을 수치화해 5/4 박자의 리듬 요소로 만들어 음표로 그려 일기를 적어나가고, 우울함을 느낀 이유도 가급적 태그로 정리한 다음, 태그들을 적당히 너댓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 카테고리의 태그에 해당하는 일기들을 모아 한 악기의 악보로 정리하여, 결국 너댓 개의 악기가 사용되는 곡이 완성된다는 이야기. 짜잔.
정말 웃기지 않을까? 심지어 이걸 기획서로 만들어서 어디 레지던시에 어플라이라도 한다면, 아,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쫌 귀여운 듯. (…)
6. 앞서도 말했든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작스럽게 좀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타블렛도 있으니! uulhan ilgi를 시작해 볼까 생각해 봤지만, 역시 생일에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조금 참고 기다려 보기로 하겠음. 닥치고 마그네슘이나 먹어야겠다.
7. 이런 생각들이 갑자기 줄줄이 이어지는 것은, 일부는 역시 긴장의 이완 탓이겠고, 일부는 마쳐야 할 과제가 이제는 정말 기요틴처럼 드리워져 있기 때문인지도… (어련하겠어.) 정말 올 봄은 작업에 관한 한 완전한 식물인간이었기 때문에, 4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매일 집밖에도 안 나가고 오직 작업만 붙잡고 있었음에도 진행 중이던 곡들을 단 한 곡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기록적인 삽질이었다. 그 대가의 일부는 올 여름에 치렀고, 남은 것을 지금부터 며칠 내로 치러야 하는 것인데…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4월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려. 남들은 방학 때 쉬고 오면 재충전이 된다는데… 이것도 위염-살과 비슷한 건가.
분류:워드프레싱, 재앙의습격 | 2개의 댓글
태그:마사토끼, 과제, 불안, 불행, 학적, 행복, 우울, 위염, 작업, 체류증, 커피우유신화, uulhan ilgi
위염’하고 살’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거 같다.
정말 그런 듯 ㅠㅗㅠ